같은 작가로서 직접 써 보고 드리는 추천
예술가에게 선물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새로운 재료와 도구는 언제나 반갑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보자나 이제 막 시작한 작가는 재료에 넉넉히 돈을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잘 고른 선물이 더욱 반갑습니다. 생일이든 명절이든, 아무 날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핵심은 상대가 그 선물을 실제로 쓸 수 있는지, 아니면 그가 하는 작업과 아무 상관이 없는지 가려내는 일입니다. 상대와 그의 작업 방식을 잘 안다면 가장 좋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친구나 가족에게 물어보거나, 그가 SNS에 올린 작업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게는 연필과 종이가 늘 필요합니다. 색연필, 연필, 종이 패드는 성의 없는 선물이 아니라 실용적인 선물입니다.
반면 유화 물감은 잘못 고르기 쉽습니다. 다른 물감에 비해 뒷정리가 까다롭고, 용제를 써서 작업하며, 냄새를 모두가 반기지는 않습니다. 용제도 알맞은 붓도 없이 유화 물감만 선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결국 받은 사람이 나머지 절반을 직접 사야 하니까요. 대체로 단순한 선물이 더 좋은 선물입니다.
연필은 훌륭한 선물입니다. 거의 모든 작가가 스케치와 밑그림에 연필을 쓰기 때문입니다. 연필 선은 지울 수 있어서, 작품 아래의 밑그림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파버카스텔과 리라 렘브란트 연필입니다. 두 브랜드 모두 심이 아주 잘 만들어져 있어서 갑자기 종이를 긁지 않고, 책상에서 한 번 떨어졌다고 바로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크든 작든 연필 세트를 반길 것입니다. 세트에는 여러 경도가 들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연필 작업을 진짜 흥미롭게 만듭니다.
리라 렘브란트 연필로 그린 초상화
파버카스텔의 폴리크로모스는 색연필로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제품입니다. 심의 안료 농도가 높아 색이 정확하고 부드럽게 올라갑니다.
세트의 색 구성이 훌륭해서 제 위시리스트에서도 늘 상위권에 있습니다. 가격대는 높은 편이지만 값어치를 합니다.
파버카스텔의 수채 색연필은 제게 특별합니다. 일곱 살 무렵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로 첫 작은 세트를 받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른 상태로든 물을 묻혀서든 즐겨 씁니다. 바로 그 점이 이 연필의 매력입니다. 색연필과 수채화의 중간쯤에 있는 도구라 활용 폭이 대단히 넓습니다. 여행할 때 낱개 수채 팬을 들고 다니기는 번거롭지만, 수채 색연필 몇 자루와 물통이 달린 붓이면 여행 스케치에 훌륭한 대안이 되고 배낭에서 자리도 거의 차지하지 않습니다.
가격은 세트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데, 작은 세트만으로도 쓸 만한 기본 팔레트가 됩니다.
파버카스텔 수채 색연필로 그린 그림
좋은 수채화 물감은 비싸지만 아주 오래 씁니다. 먼저 좋은 소식부터. 색을 낱개로 살 수 있어서 예산에 맞추기가 쉽습니다.
제 추천은 분명히 슈민케입니다. 제 수채화는 모두 슈민케로 그리고, 한 작품에 다섯 색 이상을 쓰는 일은 드뭅니다.
슈민케의 제품군은 낱개 팬부터 튜브까지 폭이 넓어서, 얼마나 자주 그리는지에 따라 알맞은 것을 고를 수 있습니다.
슈민케 호라담 수채화로 그린 초상화
슈민케는 이 세트에 12색으로 아주 쓸모 있는 팔레트를 담았습니다. 다양한 소재를 그리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좋은 점은 안쪽에 12칸이 더 들어가는 빈 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받은 사람이 시간을 두고 직접 늘려 갈 수도 있고, 다음 기회에 색을 더 선물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1/2 크기의 팬을 사야 한다는 점만 기억하세요.
뚜껑에 들어 있는 혼색용 팔레트도 실제로 아주 요긴합니다.
낱개 팬은 조금 더 저렴하면서도 충분히 기쁜 선택지입니다.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거나 도무지 고르기 어렵다면, 제가 권하는 조합을 참고해 보세요.
삼원색으로는 실패할 일이 없습니다. 초보자는 혼색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 좋고, 숙련자도 언제나 쓸 데가 있습니다. 따뜻한 노랑, 카민 레드, 울트라마린이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초상화에는 머리카락과 눈, 피부 톤을 섞어 낼 수 있는 색이 필요합니다. 선택지가 워낙 많으니, 제가 초상화에 빠뜨리지 않는 제가 특히 아끼는 색들을 적어 두겠습니다.
번트 엄버는 제가 가장 아끼는 색입니다. 그만큼 활용도가 높습니다. 물의 양에 따라 옅은 피부 톤부터 짙은 머리색까지 모두 낼 수 있습니다. 다른 색과 섞기 시작하면 정말 흥미로워집니다.
레몬 옐로는 피부와 머리카락의 밑색으로, 또는 눈동자 색을 섞을 때 아주 잘 맞습니다. 파란 눈에도 군데군데 투명한 노란 기가 보입니다.
새턴 레드는 이름 그대로 붉은색이지만 약간 주황빛이 돕니다. 덕분에 따뜻한 빨강이 되어 혼색에도, 입술처럼 그 자체로 쓰기에도 좋습니다.
반대로 카민 레드는 차가운 빨강입니다. 파랑과 섞으면 그림자에 아주 잘 어울리는 멋진 보라가 나옵니다.
제 생각에 좋은 파랑 없이는 초상화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색은 울트라마린으로, 초상화의 모든 그림자에 씁니다. 번트 엄버와 섞으면 거의 회색이 되는데, 따뜻한 안료와 차가운 안료가 서로를 절묘하게 상쇄하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금발을 칠할 때도 아주 유용합니다.
불투명 흰색은 엄밀히 말하면 수채화 물감이 아닙니다. 수채화에서는 투명한 층을 쌓고, 흰색은 종이를 남겨서 얻으니까요. 그럼에도 불투명 흰색은 초상화를 포함해 그림의 마지막 단계에서 강조를 넣는 데 자주 쓰입니다.
종이도 훌륭한 선물이 됩니다.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종류가 대단히 많아서, 작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기본적인 소모품을 채워 주기도 합니다.
품질이 아주 좋은 순백색 드로잉 용지입니다. 낱장이 패드에서 깔끔하게 떨어지고, 안료를 잘 받아들이며, 지우개질에도 상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로 초상화에 쓰지만 풍경이나 다른 소재도 잘 어울립니다.
이름의 Nostalgie는 종이의 따뜻한 흰 톤을 가리킵니다. 늘 순백색 종이에 그려 왔다면 기분 좋은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품질은 앞의 하네뮬레 패드에 전혀 뒤지지 않습니다.
수채화에서는 알맞은 종이에 그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반 드로잉 용지는 그만큼의 물을 받아들이지 못해 우글거리거나 보풀이 일어납니다. 좋은 그림이 순식간에 망가질 수 있으니, 수채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채화용 종이를 늘 넉넉히 두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양면을 모두 쓸 수 있는 패드를 좋아합니다. 한 면은 거칠고 다른 면은 매끄러운데, 양쪽 모두에 칠할 수 있습니다.
수채화 용지의 거친 면에 그린 금붕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연말에 전혀 다른 품목을 파는 가게에서 여러 가지가 잔뜩 들어 있는 값싼 “화구 세트"를 사는 것은 강력히 말리고 싶습니다. 품질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아서 작가에게 아무런 기쁨도 주지 못합니다.
물감을 거의 머금지 못하는 싸구려 붓, 안료가 약한 색연필, 뻣뻣한 인체 모델, 덩어리진 물감 튜브는 몇 번 시도해 보다 결국 버려지기 마련입니다. 수량보다 품질을 고르세요.